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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 이야기 #06] 빨간마티즈 아가씨, 편의점은 마음을 추스를 수 있는 장소.DOING/Daily Reflection 2015. 3. 30. 12:50
아침 7시쯤되면, 빨간마티즈가 우리 편의점 앞에 도착했었어.
꽤 괜찮게 생긴 아가씨였는데, 편의점 근처에 한전이 있어서 그쪽으로 출퇴근 하는것 같더라. 그분이 우리 가게에서 주로 사가는 품목은 즉석 아메리카노 한잔이었어. 커피콩을 갈고 물을 흘려보내 진한 아메리카노를 만들기까지 30초~40초 정도 걸렸지.
짧은 시간이지만 쑥맥인 내게는 충분히 긴 시간이었어. 그때는 그랬다. 뭔가 손님한테 물건을 사게 종용해야 할것 같고, 말동무가 되어드리는게 서비스직으로써 의무와 같다고 여겼었지.
쑥맥인 내가, 여자한테 말거는게 쉬운일도 아니고. 서비스 해드릴게 뭐가 있겠어?
손님에게 서비스한다라는 생각에 미리 아메리카노를 뽑은거야. 식은커피를 준비한건 아니야. 손님이 마티즈에서 내릴때까지 짧은 시간이 있단 말야? 그때 뽑아놓으면 딱 40초 될것 같더라고. 뭐 그분은 이전처럼 아메리카노를 주문하셨고, 내려진 커피를 곧바로 드렸지. 그런데 웬걸... 잠시 커피를 보던 그분은 아메리카노를 하나더 주문하시더라고. 40초 쯤 지나고 커피가 다 내려지자 내가 미리 뽑아둔 커피를 나한테 마시라고 주시고 나가시더라. 왜 준거지? 미리 뽑아줘서 고맙다고?
나는 어리석게도 내 서비스가 먹혔다고 생각한거야. 손님을 가게에서 빨리 보낸다는 것이 사명이 된 것처럼 미리 뽑아놨어. 어느날 그분이 그러더라. "오늘도 뽑아줬네? 몇살이야?"
얼떨결에 '21입니다.' 라고 답했지. "아직 애네." 첫 대화였어. 이후에도 별 대화는 없었어. "오늘도 수고하세요.", "그래" 이정도?
달라진게 있다면 40초 빨리 보내려고 했는데 그게 2분~3분이 되어버린거야. 가게에서 마시고 나가시더라.
별 말씀은 않으셨지. 내가 거길 그만두는날에도, "앞으로는 내가 커피 뽑아먹어야 겠네" 라는 말만 하셨어. 편의점의 로맨스 같은걸 기대했다면 미안해.
그때는 '내 서비스에 고객이 넘어갔다.' 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것 같아.
회사로 출근하기 전에 마음을 추스를 수 있는 그런 장소가 필요했던거야. 빡빡한 일상에서 부담감을 벗어줄 장소?
큰성벽을 마주보고 세워질 막사 같은 역할인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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